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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들여다보는 증평 연대기

증평군 문화재 탐방

지역마다 존재하는 문화재는 그곳의 옛 모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증평군에 현존하는 문화재는 개수도 많고, 분포도가 지역 곳곳에 고른 편이다. 특히 불교 관련 유적들이 많아 최근 충청지역 불교문화유산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기 좋은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옛날 증평에서 불교가 얼마나 왕성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불교의 흔적이 묻어나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의 문화재를 둘러보고, 증평을 빛낸 인물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발자취를 시대 순으로 소개한다.

증평의 불교문화 발자취 (삼국시대~고려시대)

한반도에서 불교문화가 가장 왕성하게 꽃피운 시기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다. 증평의 불교문화유산들 역시 그 시대가 낳은 것인데, 대다수가 불상과 보살입상 그리고 석탑이다. 아쉬운 점은 그 많은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사찰 대부분이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다. 증평의 문화재 중 명칭에 '남하리사지 삼층석탑', '미암리사지 석조관음보살'처럼 절터에서 발견됐음을 의미하는 '~사지'가 따라붙어 있는 것이 다수인 것도 그 때문이다.

①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

남하리사지에는 마애불상군1)과 삼층석탑이 소재하고 있다. 마애불상군은 부분에 따라 6세기와 9~10세기, 삼층석탑은 9~10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은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최근 증평군에서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불교문화적 가치가 훌륭하고, 증평에서 가장 대표되는 문화재임 의미한다.

#알아가기

1)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
바위에 조각된 불상이 모여 있는 것을 의미.

증평읍 남대산 능선을 오르면 산기슭 한 편에서 남하리사지 문화재를 마주할 수 있다. 눈이나 비가 내린 뒤에는 오르기 어려운 산중에 증평군 중심을 방향으로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 자리한 데에도 유래가 있다. 고려시대 남대산 주변 마을에는 국가에 바칠 무기를 만드는 염곡소(念谷所)가 있었다. 불을 많이 다루어 마을로 퍼지는 화기(火氣)를 막아 화재를 예방할 방법을 모색한 끝에 산천비보사상(山川裨補思想)에 따라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마애불상군의 모습은 보호각 안에 자리한 두 바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측 큰 바위에는 삼세불2)과 협시불3) 총 네 명의 부처가 조각되어 있는데, 부식으로 그 형상은 희미하지만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좌측 삼각형의 바위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부처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여느 반가사유상과 다르지 않게 한쪽 손을 편안히 턱에 괴고 있는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가장 부식이 심한 이 불상은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 식별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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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세불[三尊佛]
본존불(本尊佛)과 좌우에서 시립하는 보처불보살(補處佛菩薩)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 세 부처는 각각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한다.
3) 협시불[脇侍佛]
불교에서 본존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

② 남하리사지 삼층석탑

마애불상군 옆으로는 남하리사지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몸돌 폭이 위로 갈수록 좁고, 지붕돌은 두꺼우며 곡선을 살아있는 것이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을 갖추고 있다. 마치 종이상자처럼 문양 하나 없어 단조롭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돋보인다. 가장 독특한 것은 탑이 세워진 위치다. 상면이 판판하지도 않은 바위 위에 두 주먹만 한 돌무더기로 받쳐 탑을 것을 보면 아슬아슬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

  • 주소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35-2
  • 지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1998. 12. 31.)

③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

다음으로 소개할 증평의 문화재는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이다. 증평군 도심 안에 소재한 미륵사 옆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 가장 쉬운 곳4)이었다. 이 불상의 특징은 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는 것인데, 때문에 증평의 ‘꽃을 든 불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불상의 얼굴은 지역의 호족얼굴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역시 그러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목구비 부분은 밋밋하게 닳아있지만 분위기는 장엄함이 느껴진다. 눈길이 가는 것은 불상이 취하고 있는 동일한 수인(手印)5)이다.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의 손동작과 같은 시무외인(施無畏印)6)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증평에 있는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인이다. 이것은 증평 일대가 오래전 평화롭고 안정된 지역이었다는 근거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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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암사 석조관음보살입상
미암사 석조관음보살입상은 증평군 증평읍 미륵사 바로 옆에 위치하지만 현재 미륵사 소유는 아니다.
5) 수인[手印]
모든 불·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 또는 수행자가 손이나 손가락으로 맺는 인(印).
6) 시무외인[施無畏印]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손 모양으로, 중생의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 준다는 뜻.

이외에도 증평의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광덕사 석조여래입상,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 남하리 석조보살입상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아쉽게도 삼국~고려시대 축조된 추성산성(국가지정문화재 사적 527호2014.1.23.)은 복원·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탐방할 수 없었다. 이곳은 증평군에 있는 한성백제기의 지방 최대 규모 토축산성으로, 증평에서 미래에 가장 기대하고 있는 문화재라고 한다.

열등감이 낳은 조선의 책벌레 (조선시대)

다음으로 조선시대의 자취를 따라 김득신 묘소로 향해보자. 김득신 묘소는 증평군 중심지에서 좌구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율리회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까지 진입하는 길은 좁고 가파르니, 방문객들은 언덕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기를 추천한다. 멀지 않아 천천히 10분 정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묘소에는 총 세 기의 무덤이 있다. 방문자 대부분 김득신을 생각하고 방문하기 때문에 가장 윗자리 묘가 김득신의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곳은 김득신 아버지 김치(金緻)의 묘이다. 높은 곳부터 차례대로 김득신의 아버지 김치, 김득신 그리고 김득신 아들의 묘인 것이다. 묘 비석의 개수를 보면 위부터 밑으로 배치된 개수가 적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에도 담긴 의미가 있다. 배치된 묘비석의 개수가 밑으로 갈수록 적어지는 것 모두 효(孝)를 생각한 옛 사람들의 마음이 숨어있는 것이다.

김득신은 조선 중기 대표적 문인이자 시인이며, 강한 독서에 대한 집념으로 다독가 혹은 책벌레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례로 그는 『백곡(栢谷)』이라는 책 한 권만 11만 번을 읽었다고 한다. 김득신이 학문에 전념한 이유는 태생부터 공부에 아둔하게 태어나 그것을 노력으로 극복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김득신의 묘비명을 보고 그의 학문에 대한 노력과 집념이 얼마나 강직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긴 세월이 흐르며 묘비의 각인은 희미해졌지만, 그의 마지막 메세지는 증평에 선명히 남아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김득신 묘소]

  • 주소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율리 산 8-1
  • 지정충청북도 지정문화재(기념물) 제160호(2014.1.3.)

온가족이 독립운동을, 연병호 일가(일제강점기)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증평의 독립운동 정신이 살아있는 연병호항일역사공원이다. 이곳은 곡산 연 씨의 집성촌으로 알려진 도안면 석곡리에 있다. 곡산은 황해도 지역인데, 그곳에서 많은 곡산 연 씨 사람들이 조선시대에 내려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한다. 이 공원에서 만난 연병호 일가 역시 곡산 연 씨에 해당되며, 연병호 생가도 이곳에 있다. 연병호 선생은 도안면에서 출색한 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다.

연병호 선생은 경술국치 후 망명하여 만주, 난징, 상해 등 중국 곳곳을 누비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가 맡은 역할은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고 상해임시정부로 조달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오가며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세계한인동맹회 등의 조직을 결성하며 독립운동을 펼쳤고, 옥고도 수차례 치렀다.

연병호항일역사공원은 민족을 위해 싸운 연병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6년 건립되었다. 공원은 무궁화동산과 독립운동 자료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 얼을 느끼고자 한다면 무궁화동산, 연병호 일가의 항일활동에 대한 기록을 만나고자 한다면 자료전시관을 찾아가면 된다. 지료전시관은 연병호 선생의 검소하고 투쟁적인 삶과 독립운동이 남긴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선생뿐만 아니라 연병호 선생의 일가 모두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감사함을 금할 수 없었다. 연병호 선생의 현 연병환, 딸 연미당, 제부 엄항섭, 외손녀 엄기선까지 일가족이 독립운동단체였던 셈이다.

[연병호항일역사공원]

  • 주소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571

2017년 증평군은 ‘품격 있는 문화·역사 도시 만들기’ 사업도 시작하여 지역의 문화재 알림에 힘을 싣고 있다. 추성산성 복원, 증평군 인물을 알리기 위한 역사공원·문학관 설립, 불상군 국가문화재 지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증평군의 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부터 비지정문화재까지 그 수가 40여 개(증평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참조)에 달한다. 풍부한 문화재와 군의 노력으로 앞으로도 볼거리가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작은 소도시에 우리가 몰랐던 역사 깊은 문화재를 찾아보는 것은 특별한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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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3-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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